불태웠어.. 새하얗게...

 
그저께..
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던가.. 아니었던가..
15년 정도 모아오던 편지들을 모두 가지고 나와 태워버렸다.
세보니 백오십 통 남짓 되던데.. 15년의 세월이 딱 ! 15분 만에 타더군.


..

늘 그런 생각을 했었어.
나한테 끔찍하게 잘 하던 쭉쭉이란 여자가 있었는데
내가 워낙 그지같은 플레이를 반복해서 헤어지게 된 거야.
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빵빵이란 여자를 만나게 됐지.
초반엔 뉴페이스의 새로움과 또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움, 그리고 실수를 만회하려는
나의 노력?으로 빵빵이와 아무 이상없이 잘 지내다가 어느 날 이런 의문이 생기는 거야.

'나한테 잘 하던 건 쭉쭉인데 왜 빵빵이가 혜택을 받는 거지??'

솔직히 저런 생각은 안 해도 연애전선엔 아~무 상관 없는 것인데
어쩌나.. 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놈인 걸.
그래서 자꾸 쭉쭉이가 보고 싶고,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,
나중에는 괜히 죄없는 빵빵이가 미워지기까지 하더구만. 한 마디로 미친 거지ㅋ


...

그녀들에게서 받았던-지금은 재가 돼버린-편지들은 나 나름대로
'이것도 추억이야.  앞으로 만날 여자하고는 별개의 노선에 있는 나의 일부라고.'
라 생각하면서 가끔씩 청소라도 할라치면 꺼내서 읽어보곤 했다.

사실 그 편지들 때문에 그녀들과 싸운 적도 몇 번 있었어.
자기 이외의 여자에게 받은-편지를 포함한-물건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게
그녀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었는데..
나 또한 그때마다 한결 같은 나의 철학?을 내세우며 그녀들의 농성을 한 방에 진압하곤 했다.
'나한테 너는 소중한 존재다. 하지만 이것들 역시 소중하다. 나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겠다.'
그래서 결국 지켰다. 근데 뭐..
왜 지킨 건지ㅎ

지금와서 돌아보니 좀 실없다는 생각도 드네.
나는 뭘 위해서 그녀들과의 싸움까지 감수해가며 저것들을 지켜왔던 걸까...


....

얼마 전 문득 '나는 좀 새롭게 태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'란 생각이 들더라. 그래서.
옛 여자들의 장점만을 떠올리며 미련을 못버리고 추억속에 빠져 사는 나를 구하기로 다짐했다.
일단 편지들부터 없애버리자 !
아직도 그것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때론 희생도 필요한 법.
앞으로는 현재에.. 더 정확히는 현재에 만나는 여자에게 집중해야지.
'실물로 존재하는 그 무언가'가 있으니 안 그래도 뻘생각 많은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.
이것들은 연애의 걸림돌이자 인생의 원흉일 뿐이야.
쭉쭉이는 필시 나한테 받은 설움을 지금쯤 다른 남자한테 보상 받고 있을 거다.. 분명히.



.....

열심히 하자. 연애든 뭐든.







PS - 종이가 오래돼 바짝 말라서 그런지 아주 타닥- 타닥- 잘 타네. 진작 태울 걸 그랬나..